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그의 사상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레닌·스탈린의 뒤를 추종했던 북한의 현실이 같은 불운을 떠안고 있다.
매춘부의 방에 들렀던 라스콜니코프가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 앞에서 나는 하느님은 모르겠으나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무릎을 꿇는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소련이 해체되면서 문예부흥이 가능해지기를 바랐다.키에르케고르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내가 대학생 때는 독일 철학자 니체.박 교수보다 내가 20년이나 일찍 톨스토이 전문가였는데…라는 사념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지나갔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를 번역한 러시아 문학 전문가였다.
정직과 정의를 믿고 사는 군 출신의 큰아들.다 읽고 난 후에는 재미에 끌려 『안나 카레리나』도 읽었다.
불행하게도 러시아가 공산국가로 전락하면서 사상의 자유가 배제되고 인문학이 버림받게 되면서 정신문화는 황무지가 되었다.kr 일본대학 예과 때였다.
한 번도 대면한 적은 없으나 러시아 문학의 동지 한 사람을 먼저 보낸 것 같은 허전함을 느꼈다.등소평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오늘의 중국은 제2의 냉전시대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