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하여 개척자의 기여가 축소되거나 완성자의 성취가 독점되는 것은 아니다.
참선비가 없었던 것도 불행이지만.참다운 선비가 보좌해주면 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진다고 여기면서 당시에도 임금을 도울 참선비가 없음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다.
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옛날이야 선비라는 남편은 집안 살림을 모르고 아내가 살림을 하던 시절이어서 어진 아내는 집안의 가난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 경우가 많았을 터이다.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요즘 사용하는 말들이야 당연히 참신해서 좋다.
그때 딱 들어맞는 해결책이 바로 ‘시의였다.
혼탁한 세상에서 어진 재상을 대망하듯이.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
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